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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7:18
1074-1270년 동안 유럽에서는 8차 십자군 전쟁이 있었다. 이 때에 예루살렘은 셀주크 투르크인의 지배하에 있었다. 셀주크 투르크인은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일어난 민족으로써 이슬람교를 받아들여 세력을 급속히 팽창시켰다. 그런데 셀주크투르크인은 다른 이슬람 교도와 달리 기독교인들의 성지 순례를 금지 시켰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의 성지 순례하는 사람들의 안전 문제로 인해 1095년 동 로마 제국 황제 알렉시우스 1세는 로마 교황 우르반 2세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로마교황은 이기회에 동 로마제국의 교회를 로마교회에 복속시키고자 하였다. 당시 동 로마 제국과 로마 교황은 서로 대립상태에 있었으며 완전히 분열되어 있었다.
1095년 우르반 2세는 클레르몽에서 회의를 열고 성지 탈환을 위한 십자군 파병을 제창하였다. 이전쟁의 목표는 성전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이라고 말하며. 십자군에 가입하면 죄를 사하여 줄뿐 아니라 사 후 에 천당에 갈 수 있다고 확신을 시켜주었다.
1099년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점령한 뒤 약탈과 살육을 자행 하였다.이슬람인이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죽였으므로 성안은 시체로 뒤덮혀 산을 이룰 지경이었다.
성지탈환에 성공한 십자군은 예루살렘에 왕국을 세우고 개선했다. 그러나 100년후 예루살렘은 곧 다시 이슬람인의 수중에 들어갔고 교황은 계속해서 십자군을 파견하였다. 8차례의 원정 중 목적을 달성한 것은 1차 원정 뿐이었다. 원정 군대는 오합지졸 이어서 유럽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을뿐 아니라 자원도 소모하였다.
1212년에 교황청은 수천명의 어린이로 조성된 어린이 십자군을 불러 모았는데 그들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렸다. 심지어 4차 원정 때 는 동 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라틴제국을 세운일도 있었다.
200년에 걸치 십자군 전쟁은 실패로 끝났다.그 결과 사람들은 교회와 교황을 절대적인 존재로 믿지 않게 되었다. 전쟁에 참가했던 영주와 기사들은 영지를 돌보지 못한 탓에 수입이 줄고 가산을 탕진하여 서서히 몰락의 길을 가게 되었다.
반면에 왕과 상인들은 세력이 커졌다.상인들은 전쟁으로 많은 돈을 벌었으며. 왕은 교황과 영주들을 누르고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상인들과 손을 잡았다. 십자군 전쟁은 봉건제도를 뒤 흔들었고 유럽사회 구조를 철저히 바꾸었다. 귀족의 지위는 하락했고 새롭게 일어난 상인과 지주가 세력을 떨쳤다.
십자군이 출발한 장소가 베네치아 였었는데 베니스 항의 안정과 활발한 상업으로 인해 부를 축적한 상인들로 인해 향후 르네상스를 촉발하게 되었다.
르네상스는 1400년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발원하였다. 이 시대의 주제는 개인주의 세속주의 이상주의 였으며 사회 중심도 봉건 제도 아래의 군왕 귀족들로 부터 점진적으로 경제적인 실권을 가지고 있던 상인들과 평민에게로 전환되었다.
이당시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었다.메디치 가문의 통치로 피렌체의 경제는 활기차게 발전하였고 정치도 안정되었기 때문에 문예 부흥의 중심이 되었다.원래 귀족이었던 이가문은 13세기에 금융업으로 가문을 일으켰고 거대한 부 를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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