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세기의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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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 시대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8:18
오스만 투르크의 셀림 1세(1512∼1520)는 1453년에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이스탄불을 건설한 후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와 여러 도시를 점령하고, 아울러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아랍 세계를 통합하였다. 1517년 술탄 셀림은 팔레스타인에 들어와 약 400년 동안 새 주인이 되었다. 이전에 예루살렘을 지배한 바 있던 셀주크 투르크는 이 지역의 문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지 못하였다. 그러나 셀림의 뒤를 이어 등장한 그의 아들 술레이만 1세(1520∼1566)는 아시아와 팔레스타인을 다스리는 오스만 제국의 황제로서 새로운 역사를 펼쳐 나갔다. 그는 자신이 점령한 지역을 봉건국으로 삼고, 그 땅을 나누어 봉건 군주로 하여금 다스리도록 하였다. 팔레스타인은 모두 4개의 지역(sanjak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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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8:11
프랑스를 전장(戰場)으로 하여 여러 차례 휴전과 전쟁을 되풀이하면서,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단속적(斷續的)으로 계속되었다. 영국은 1066년 노르만왕조의 성립 이후 프랑스 내부에 영토를 소유하였기 때문에 양국 사이에는 오랫동안 분쟁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1328년 프랑스 카페왕조의 샤를 4세가 남자 후계자가 없이 사망하자, 그의 4촌 형제인 발루아가(家)의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올랐다. 이에 대하여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그의 모친이 카페왕가 출신(샤를 4세의 누이)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왕위(王位)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양국간에 심각한 대립을 빚게 되었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하여 플랑드르에 수출해오던 양모(羊毛) 공급을 중단하고, 그 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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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 경고 그림 의무화 통과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7:50
작년 연말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던 담뱃갑 흡연 경고그림 게시 의무화 방안이 올해는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1일부터 담뱃값이 2천원 인상되는 '가격 금연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담뱃갑의 경고그림 게시 같은 '비가격 금연정책'의 병행 없이는 장기적인 흡연율 저하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4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담뱃갑 포장지에 흡연의 폐해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경고그림을 표기하도록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은 작년 12월 예산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예산 국회라는 이유로 정책적인 내용인 흡연 경고그림 게시 부분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추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지만 논의·처리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 정부 입법 의지 크지만…국회 처리 낙관 못해 작년 입법에는 실패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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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전쟁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7:29
몽골 제국은 왜 그리도 급팽창햇고 또 왜 그리도 단명햇는가 ? 몽골 제국은 징기스칸이 1206년 아무르 강 지류인 오논 강변에서 설립한 제국이다. 그는 동쪽의 동중국해 블라디보스톡 부터 만주 중국의 북부지역 그리고 서쪽으로는 카스피해까지 남으로는 티베트 고원까지 파죽지세로 영토를 확장하다가 1227년 전쟁중 변사햇다. 그가 장악햇던 영토는 다음과 같다. 그의 뒤를 이은 2대 칸은 징기스칸의 셋째 아들인 오고타이 칸이다. (우구데이칸).그는 원나라 태종이다. 그의 치세 때 몽골 제국은 가장 넓은 영토를 확장햇다. 역사상 중국이나 한국이나 태종이라고 불리우던 사람들은 대부분 똑똑하고 용맹하고 야심차고 설립자인 태조 못지않게 국부를 증강시킨 대부분 창업자의 셋째 아들인 점이 공통점이다. 당태종 이세민이도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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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7:18
1074-1270년 동안 유럽에서는 8차 십자군 전쟁이 있었다. 이 때에 예루살렘은 셀주크 투르크인의 지배하에 있었다. 셀주크 투르크인은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일어난 민족으로써 이슬람교를 받아들여 세력을 급속히 팽창시켰다. 그런데 셀주크투르크인은 다른 이슬람 교도와 달리 기독교인들의 성지 순례를 금지 시켰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의 성지 순례하는 사람들의 안전 문제로 인해 1095년 동 로마 제국 황제 알렉시우스 1세는 로마 교황 우르반 2세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로마교황은 이기회에 동 로마제국의 교회를 로마교회에 복속시키고자 하였다. 당시 동 로마 제국과 로마 교황은 서로 대립상태에 있었으며 완전히 분열되어 있었다. 1095년 우르반 2세는 클레르몽에서 회의를 열고 성지 탈환을 위한 십자군 파병을 제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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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공국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7:16
911년 7월 20일 롤로는 생클레르-수르-압Saint Clair-sur-Epte 조약을 통해 서 프랑크의 단순왕 샤를 Charles the Simple3세와 노르만인에 의해서 점령되었던 네우스트라시아Neustrasia의 일부 인 루앙Rouen 주위의 동부 노르망디를 영토를 하사받는 대신 더 이상 약탈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였다. 이것이 노르망디 공령公領의 시초이다. 센Seine 강어귀 양편의 노르망디 땅을 받는 대가로 노르망디 공작에 임명된 롤로는 프랑스의 샤를 단순왕을 주군主君으로 인정하고 세례를 받았다. 이 조약에서 샤를 3세가 롤로에게 수여한 땅은 후일 노르만인의 땅이란 뜻인 노르망디라 부르게 되었다. 롤로는 처음에는 샤를과의 약속을 잘 지켰지만 얼마 뒤 약속을 어기고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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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의 침략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7:11
바이킹은 대략 9세기경부터 11세기까지 맹위를 떨친 민족을 모두 합쳐서 부르는 말입니다. 학술적으로는 노르드인이라 부름니다. 바이킹들이 살았던 지역은 발트해 주변의 지역입니다. 지금의 노르웨이 스웨덴직역과 발트해 주변의 연안지역들이죠 초기의 바이킹들은 헤데뷔(Hedeby)같은 큰 무역도시에서 출토된 유물로 이들의 생활상을 알수 있습니다. (헤데뷔의 위치) 바이킹들은 발트해 주변에서 어업과 상업 그리고 약탈을 주로하던 민족입니다. 이들은 배를 잘타는 어부나 수부들이 많았던 관계로 강이나 바다가 연결된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활동 가능했습니다. 이들은 바다와 강이 있다면 어디든가서 약탈할수 있었고 바이킹에 의해 세워진 왕조도 있습니다. 러시아의 시조인 류리크1세도 이 바이킹의 일파로서 노브고로드지역을 정복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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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튀르크 전쟁의 초기 경과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7:04
로마-튀르크 전쟁의 초기 경과 1047-8년경, 바그다드의 유력한 튀르크 제후 중 하나인 토그룰의 가신인 쿠툴미쉬가 디야르바키르 토후국을 공격하다가 패배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쿠툴미쉬는 퇴로가 차단되는 바람에 갇히게 되었으며 그 결과 무사히 퇴각하기 위해서는 로마 제국의 바스파루칸 지역을 경유해야 했습니다. 쿠툴미쉬는 어쩔 수 없이 바스파루칸의 총독에게 연락을 취해 ‘군기를 엄정하게 유지하며 통과할 것’을 약속하며 길을 열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남의 영토를 제지 없이 넘나드는 타국의 군대에 대한 경계심이 있었던 까닭에 바스파루칸 총독은 이 요청을 거절하고 군대를 소집해 통로를 차단하려 합니다. 결국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움직여야 함을 알게 쿠툴미쉬는 즉각 자신의 군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