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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엽기적인 두장로 이야기
    Dung--[엽기세상] 2015. 2. 26. 12:15

    중병 걸린 뒤 충격 받은 장로

     

    어느 교회의 장로가 지병인 암으로 3개월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그는 교회를 잘 섬기고 교회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꽤 괜찮은 보통 장로였다고 한다. 그런데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극단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내게 이런 질병을 주실 수가 있느냐며 크게 좌절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은 시련도 주신다며 위로하고, 함께 기도로 이겨내 보자고 격려했다고 하는데, 병세가 호전되지 않자 그는 점점 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그 장로는 결국 회개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질병을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하지 않고 저주하며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잘 믿던 장로도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천국을 소망하던 사람도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들을 남기고 떠나는 상황에 좌절과 염려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죽는 자체보다도 치료 과정의 고통 때문에 힘들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잠시 충격을 받았다가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시련과 질병과 죽음이 온다는 당연한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장로의 이야기를 보면 한국 교회가 육체의 건강을 포함한 이 땅에서 잘 되는 것들을 주로 축복으로 이해하고 가르쳐 온 일들의 결과물을 보는 것 같다. 오순절 은사운동을 하는 교회에서는 병이 나아야 구원도 받은 것이라 하고, 기도로 병을 다 고칠 수 있다고도 한다. 이런 생각은 일반 교회에도 상당히 퍼져 있다. 대표적인 은사주의자인 장풍맨(?) 베니 힌의 축복 기도를 들어 보면, 온몸의 장기와 지체들을 다 불러가며, "예수의 이름으로 암과 관절염과 두통과 치통과 감기는 사라질지어다!!" 하고 기도를 한다. 회중의 "아멘!" 합창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의 병을 고쳐 주신다. 그러나 그것을 특정인에게만 신통한 능력으로 주시지 않았다. 그것은 과도기에 국한된 일이다. 그리고 병을 몇살까지 고쳐주셔야 되겠는가. 위와 같은 기도를 하는데 구십 노인이 앉아서 아무리 "믿-습니다"를 외쳐도 당장 관절염을 캐내서(?) 조깅으로 귀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낡고 쇠퇴하는 우주의 법칙이다. 그리고 그 법칙이 적용되는 시간은 각자 조금씩 다르다.

     

    우리는 몸의 강건함과 장수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하늘의 기쁨과 부활의 소망을 안고 사는 것인데, 아마 그 장로도 대표기도 시간에는 그런 기도를 했을 테지만 자기 일이 되고 나니 감당이 안 되었을 것이다.

    교회의 직분을 하나의 감투로 알고, 섬김을 받으며 어깨에 힘주는 자리로 알았기 때문에 구원조차 받지 못한 사람이 그런 자리까지 올라간 것이 분명하다. 또한 교회들은 장로의 요건을 많은 헌금과 사회적 지위, 그리고 교회에서의 활용 가치 등으로 규정해놓았기 때문에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겉으로 보았을 때 자기를 포장하면 그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어떤지 잘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주변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는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그 장로의 주변에도 그리스도인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동안 바친 헌금 토해내라는 장로

     

    이 장로는 30년 전에 개척된 감리교회의 초창기 멤버였다. 기도할 때는 한 마디도 안 틀릴 정도로 야무지게 잘 하던 집사였고, 교회 일도 잘 이끌어가던 중직자였다. 교회는 부흥이 되어 10여 년 지나자 건물을 짓게 되었고, 그 사람도 장로가 되어 여러 일을 맡아 해왔다.

    그러다가 아들이 커서 신학을 하게 되었고, 먼 오지에서 개척을 하게 되었다. 힘든 고난의 삶이 앞에 놓이게 되니 당연히 필요한 것도 많아졌다. 당장 돈이 제일 필요할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 장로는 자기가 오랫동안 섬기던 교회에 한 가지 요구를 했다. 바로 자기가 맨 처음부터 지금까지 냈던 헌금을 다 되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이 황당한 사건에는 귀를 의심했다. 그 교회는 나도 아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에게 "에이, 잘못 들었겠지... 설마." 했을 정도로 내게는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생각은 해도 창피해서 못 꺼낼 이야기이고, 어떤 불교 사찰이나 사회 기부단체 등에서도 듣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닌가... 그것도 일년치도 아닌 30여 년치를 다 소급해서 내놓으라니, 그 돈은 이미 벽돌이 되었고 강대상이 되었을 텐데 뭘 빼가겠다는 것인가 말이다.

     

    그 장로는 자기 아들의 개척을 너무나 안타깝고 중요한 일로 여겼을지 모른다. 그리고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라고, 어차피 하나님 일인데 이쪽에서 토해서(?) 저쪽에다 쓴들 무슨 상관이랴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치졸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 돈을 가져가서 아들의 목회를 도우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과연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일까?

    이런 현상은 교회가 비즈니스처럼 운영되는 실태의 단면이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그 장로가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그의 아들은 교회를 개척했다기보다 조금 특이한 벤처기업 하나를 창업한 것과 비슷한 것이다. 대체 한국 교회가 어쩌다가 이 정도로 천박한 에피소드를 낳게 된 것일까...

     

     

     

    이 놀랍다 못해 엽기적인 이야기들은 매우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웃들의 모습이라 더욱 놀랍다. 나와 우리가 그런 사람들보다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교인이나 신자는 많아도 그리스도인이 적다는 것에 놀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사례는 무척 많다. 교회 돈과 자기 돈 구분 못하는 목사, 돈을 갖고 튄 전도사, 현지에서 한국은 물론 하나님을 욕되게 한 한류(?) 선교사, 당회에서 쌍시옷 남발하는 조폭 같은 장로, 교인에게 사기 치는 집사까지... 얼마 전 사찰 시설에서 술판 벌인 중들이나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일들은 대수술이 필요한 교회들의 이야기이며, 더 나아가 교회가 아닌 곳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교회로 알고 있다. 이렇게 기독교는 사람들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참된 기독교가 교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날, 종교적 콘텐츠와 상품들을 유통하는 곳이 교회가 아님을 교회들이 받아들이는 날은 대체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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