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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전쟁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6:38
BC 12세기에 북쪽으로부터 침입하여 들어온 도리스인이 이 후 마케도니아인의 중심이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BC 640년경 아르고스의 명문 자손인 페르디카스가 일리리아 지방으로부터 들어와 마케도니아 왕국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아이가이를 수도로 하여 왕가가 성립되었다고 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BC 514∼BC 479년의 페르시아전쟁 시기에는 페르시아 쪽에 가담하였고, 페르시아 세력이 후퇴한 후로는 그리스와의 관계가 심각해져서 정치적 ·군사적 충돌이 잦았다. 아르켈라오스 왕의 치하(BC 413∼BC 399) 때부터는 그리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군비를 강화하였다. 필리포스 2세는 내란을 진압해 국력을 강화하였다. 트라키아를 병합하는 등 국토를 수배로 확장하였으며, BC 338년에는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를 항복시키고 헬레네스 연맹을 결성하여 전(全)그리스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듬해에는 그리스 폴리스 연합의 군사 총사령관으로서 페르시아에 대한 국민적 보복전(報復戰)에 나섰다. 그러나 필리포스가 중도에서 암살되자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마케도니아 왕위에 올라, 그리스에서 일어난 반(反)마케도니아 동란을 진압하고, BC 334년 죽은 부왕(父王)과 똑같은 자격으로 페르시아 정벌에 나섰다. 그는 BC 330년에 페르시아제국을 정복하고, 이어 인도의 인더스강까지 동정(東征)을 계속하여 유럽 ·아시아 두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이 때가 마케도니아 왕국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융성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동정 중 마케도니아 본국과 그리스 및 트라키아의 군사 ·정치를 그의 측근이며 총독인 안티파트로스에게 위임하였다. BC 323년 대왕이 급사하자 왕위계승자로 대왕의 이복동생인 아리다이오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왕비 로크사네 사이에서 출생한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재위 BC 323∼BC 310)의 공동통치가 군대 및 장군들에 의해 확인되고, 마케도니아는 안티파트로스가 종전과 마찬가지로 섭정이 되어 관리하도록 결정하였다. 이후 왕족 ·근신(近臣), 여러 장군들 사이의 권력투쟁이 격렬하게 전개되어 필리포스 3세인 아리다이오스는 BC 317년에 태후 올림피아스에게 살해되고, 올림피아스와 로크사네 및 알렉산드로스 4세는 안티파트로스의 아들 카산드로스에게 살해되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왕통은 단절되었다. 카산드로스는 필리포스 2세의 딸 테살로니케와 결혼하여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마케도니아 왕국은 1대에 끝나고, 안티고노스 1세가 마케도니아 왕을 자칭하였고, 왕위는 그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1세 ·리시마코스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 등으로 전전하여 내려오다가 데메트리오스 1세의 아들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에 이르러 확정되었다. 그는 여기에서 안티고노스 왕가를 확립하였다(BC 272).
그의 사후 필리포스 5세(재위 BC 222∼BC 179)는 지중해 세계로의 진출을 도모하였으나, 로마의 동방진출정책과 충돌하게 되었다. 그는 제1회(BC 215∼BC 205)와 제2회(BC 200∼BC 197)의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패한 후 국력회복을 꾀하였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아들 페르세우스 왕도 부왕의 뜻을 이어 반(反)로마정책을 취하여 로마와 다시 충돌하였으나(제3회 마케도니아전쟁, BC 171∼BC 168), 로마군에게 패배하여 포로로 잡혀감으로써 마케도니아는 멸망하고 로마의 속주(屬州)가 되었다. 마케도니아 왕국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하여 세계제국으로 세력이 신장되었고, 짧은 시기에 대제국은 멸망하였지만, 그로 인하여 그리스 문화가 유럽과 아시아 및 이집트에까지 유포되었다. 통일국가를 형성한 대왕에 대한 군주예배는 후세의 시리아 ·이집트, 그 밖의 여러 나라에서 지배자에 대한 신적(神的) 권위의 계기를 만들었다.
마케도니아 전쟁 상황
제1차 전쟁(BC 215∼BC 205)에서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5세(재위 BC 222∼BC 179)는 로마와 혈투를 거듭하던 한니발과 동맹을 맺고 로마에 도전하였으나, 결국 승패 없이 끝났다.
제2차 전쟁(BC 200∼BC 197)에서는 그 후 필리포스 5세가 주위의 여러 도시에 압력을 가하자, 이들 도시는 로마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로마의 장군 플라미니누스는 키노스케팔라이전투에서 필리포스의 군대를 격파, 그리스 여러 도시에 대한 마케도니아의 패권을 포기시켰다.
제3차 전쟁(BC 171∼BC 168)에서는 필리포스의 아들 페르세우스가 잃은 패권을 되찾으려 하다가 로마의 장군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에게 피드나에서 크게 패하여 마케도니아 왕국은 멸망하였다.
제4차 전쟁(BC 150~BC 148)에서는 안드리스쿠스(Andriscus)가 페르세우스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마케도니아 왕국의 재건을 꾀하였다. 그러나 로마의 재빠른 군대 파견으로 안드리스쿠스 세력은 완전히 제압당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로마의 군대는 그리스 반도에서 철수하지 않고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BC 146년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Dung--[세기의전쟁]'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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