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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 노예 반란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6:45
스파르타쿠스 노예 반란
훗날 자유와 인권을 갈망하는 이름이 되어버린 '스파르타쿠스'는
레닌, 볼테르, 마르크스와 같은 혁명가들에게 자극과 동기부여를 주었습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지금의 불가리아인 트라키아 출신으로
기원전 73년경 고대로마시대에 노예 반란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트라키아 왕족의 이름에는 스파르타쿠스가 있는데요.
검투사들 사이에서 왕족으로 신분이 높은 자로 알려져 지지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이 있었던곳은 카푸아의 검투사 노예양성소였는데요.
처음에는 약 70명으로 구성된 검투사들이 탈주하게 되었습니다.
탈주한 검투사들로 시작해서 노방한 노예들과 케트족과 트라키아인들 및
농장에 일하는 일꾼들까지 모였는데요. 그 수가 9만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당시 지중해로 진출한 로마군은 전투를 하고 있었는데요. 처음
스파르타쿠스 노예 반란은 사소한 폭력사태로 보였습니다. 조직적인 전쟁이
아니었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긴급대응은 필요했습니다.
스파르타쿠스 반란세력은 로마군을 여려 차례 무찌르게 되는데요.
주력이 공격인 로마군은 대체로 방어가 두텁지 않았습니다. 반면
스파르타쿠스 세력은 강하고 습격이 주공격이었습니다.
또한 스파르타쿠스 세력의 트라키아인과 켈트족은 전쟁에 앞서 술을 마시는
관례가 있었는데요. 용기백배한 그들의 공격은 로마를 압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 남부를 거의다 장악합니다.
스파르타쿠스의 세력은 이제 9만을 넘어 12만명에 이르게 됩니다.
이들의 목적은 로마를 정복에 있지 않았는데요. 검투사가 된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스파르타쿠스의 계획은 군사들을 이탈리아북부를
넘게해주고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 반도에 결국 갖히게 되었는데요. 이를 탈출하기 위해서
시실리아 해적과 약속을 하고 배에 오르고자 했으나 로마에 매수당한 그들의
배신으로 육지를 통해 북쪽으로 진격을 하게 됩니다.
기원전 71년 스파르타쿠스의 군대는 8개 군단을 거느린 로마군의 공격을
받습니다. 이 전쟁에서 스파르타 쿠스는 전사하게 됩니다. 거의 전멸한
스파르타쿠스 군대와 나머지 패잔병은 폼페이우스 로마군대에 의해 거의 죽게되고
나머지 약 6천명은 포로가 되어 아피아 가도에서 십자가형으로 죽음을 맞습니다.
로마는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통해서 정치적으로 변화가 일어나는데요.
노예가 주인을 죽일경우 모든 노예를 사형시키는 법이 만들어지게됩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연설에 능하고 유능하고 인간적인 사람으로 알려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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