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ng--[세기의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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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만 제국: 발흥과 영토의 확장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6:55
오늘날의 이란과 이라크에 걸쳐 11세기 초반에서 중반에 셀주크 제국을 건설한 투르크계 오구즈 부족은 당시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비잔틴 치하에 있던 아나톨리아(오늘날 터키 중부 및 동부)로까지 침입하여 이들 지역에 새로운 셀주크 국가를 건설했다. 투르크 군은 1071년 만지커트(아나톨리아 동부 끝자락에 있는 소도시) 전투에서 비잔틴 황제 로마노스 1세를 생포하는 등 대승을 거뒀고 그 후 비잔틴 영토를 계속 잠식해가면서 소아시아 전역에 걸쳐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투르크 부족들은 11세기 말 전후해서 몇몇 국가들을 형성했고, 이들은 역사의 흐름을 문명권 바깥에서 놀던 유목민 전사(戰士) 대 세련됐으나 문약하기만 한 정착민 사회 간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파악했던 이븐 칼둔의 역사발전 패턴을 그대로 밟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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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로마 전쟁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6:51
헤롯 왕 사후, 유대 식민지 지방은 로마의 총독에 의한 직할지였지만 헤롯 왕의 자손인 아그리파 1세는 교묘하게 로마의 정치를 움직여 서기 41년에 유대왕이라는 칭호를 받는데 성공하여 유대 지역의 통치를 받아냈다. 아그리파 1세가 44년에 병사하자 다시 유대 지방은 로마의 직할지가 되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기본적으로 피지배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로마에 협조적인 통치자를 두어 관리했는데 다신교(多神敎) 문화가 많던 지중해 세계에서 유대 지역은 유일하게 일신교(一神敎)를 신봉하는 문화지구여서 유대인들의 로마에 대한 반감은 한층 높아져갔다. 그 때 유대 식민지의 총독이던 프롤루스는 예루살렘의 도시정비를 위해 그 자금으로 유대인들이 신전에 바치는 보물을 내놓으라고 명령했다. 누가복음에선 예수가 세리장 자케오(삭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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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전쟁과 악티움 해전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6:50
미트리다테스-- 폰투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 6세(미트라다테스)는 영토를 확장하려는 자신의 계획에 로마가 끼어들자, 로마인을 소아시아에서 몰아낼 계획을 세웠다. 그는 로마가 동맹시 전쟁(기원전 91년- 기원전 88년) 때문에 당분간 군대를 보낼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기원전 91년, 30만에 이르는 폰투스 군은 로마의 속주인 페르가몬(고대 그리스 도시)으로 쳐들어 갔다. 기원전 88년 미트리다테스는 아시아에 있는 로마인과 이탈리아 주민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 결과 8만여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죽었다. 그 무렵 술라(동맹시 전쟁에서 돌아 온)는 집정관에 당선되었다. 그는 집정관에 오르자 바로 미트리다테스와의 전쟁을 준비했다. 그러나 지휘권이 마리우스(동맹시 전쟁의 총사령관)에게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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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 노예 반란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6:45
스파르타쿠스 노예 반란 훗날 자유와 인권을 갈망하는 이름이 되어버린 '스파르타쿠스'는 레닌, 볼테르, 마르크스와 같은 혁명가들에게 자극과 동기부여를 주었습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지금의 불가리아인 트라키아 출신으로 기원전 73년경 고대로마시대에 노예 반란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트라키아 왕족의 이름에는 스파르타쿠스가 있는데요. 검투사들 사이에서 왕족으로 신분이 높은 자로 알려져 지지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이 있었던곳은 카푸아의 검투사 노예양성소였는데요. 처음에는 약 70명으로 구성된 검투사들이 탈주하게 되었습니다. 탈주한 검투사들로 시작해서 노방한 노예들과 케트족과 트라키아인들 및 농장에 일하는 일꾼들까지 모였는데요. 그 수가 9만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당시 지중해로 진출한 로마군은 전투를 하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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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 전쟁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6:38
BC 12세기에 북쪽으로부터 침입하여 들어온 도리스인이 이 후 마케도니아인의 중심이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BC 640년경 아르고스의 명문 자손인 페르디카스가 일리리아 지방으로부터 들어와 마케도니아 왕국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아이가이를 수도로 하여 왕가가 성립되었다고 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BC 514∼BC 479년의 페르시아전쟁 시기에는 페르시아 쪽에 가담하였고, 페르시아 세력이 후퇴한 후로는 그리스와의 관계가 심각해져서 정치적 ·군사적 충돌이 잦았다. 아르켈라오스 왕의 치하(BC 413∼BC 399) 때부터는 그리스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군비를 강화하였다. 필리포스 2세는 내란을 진압해 국력을 강화하였다. 트라키아를 병합하는 등 국토를 수배로 확장하였으며, BC 338년에는 그리스의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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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니 전쟁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6:24
기원전 753년 세워진 로마는 에트루리아를 북쪽으로 몰아내고 점점 힘을 키워 지중해의 강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로마의 성장에 강력한 맞수가 등장하니 그 맞수가 바로 "카르타고"입니다. 1차 전쟁 땅개vs물개 포에니 전쟁은 시라쿠사에 있는 메시나의 마메르티니 족의 반란인데 이때 마메르티니 족은 카르타고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또 카르타고 견제를 위해 로마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로마건 카르타고건 지중해에서 영향력을 키울 기회를 노리던중 시라쿠사에서의 도움요청은 적절한 때에 찾아온 기회였고 두 나라는 시라쿠사에서부터 지중해까지 팽팽하게 대치하게 됩니다. 육상전에서 이기면서 점점해군을 키우던 로마는 카르타고의 수도 카르타고 까지 쳐들어가서 대치했고 카르타고의 용병대장 크산티포스가 이끄는 카르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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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의 가우가멜라 전투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5:53
가우가멜라 전투와 알렉산더 영화 보기를 좋아하지 않으니 라는 영화를 봤을 리 없겠지? 이 영화에서는 여러 전투 장면이 나오지만 가장 압도적인 전투 하나가 등장하지. 가우가멜라. 페르시아 말로 낙타의 집이라는 뜻이었다는데 이 가우가멜라에서는 고대 세계사에 기록될 대전(大戰)이 펼쳐졌지. 바로 페르시아의 ‘왕 중 왕’ 다리우스 3세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대왕’ 알렉산더가 이끄는 수십만의 대군이 제국의 흥망을 놓고 벌인 전투였어. B.C. 331년 10월 1일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보면 소년 알렉산더의 면모를 잘 일러 주는 일화 하나가 등장하지. 바로 그의 애마 부케팔로스와 관련된 것인데 부케팔로스는 뛰어난 말로 보이긴 했지만 워낙 거칠어서 누구도 살 사람이 없었지.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립포스도 고개를 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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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Dung--[세기의전쟁] 2015. 2. 26. 15:41
페르시아전쟁을 승리로 이끈 직후였던, 페리클레스의 시대에 아테네의 '영광'은 최고 절정에 도달해 있었다. 아테네는 도시국가가 아니라 그리스 세계의 맹주로서 그리스·소아시아·지중해 일대를 장악하고 있어 '아테네 제국'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페리클레스는 그리스와 소아시아 그리고 지중해 일대에 걸친 아테네의 '영광'이 현상 유지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테네의 '영광'은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강자 스파르타가 존재하고 있는 한, 언제 어디에서 어떤 위험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테네의 '영광'에 도취되어 그리스 동쪽의 강국 이집트는 물론 서쪽의 강국 시칠리아와 카르타고까지 정복하자는 아테네인들의 주장에 그가 그토록 반대했던 이유도 바로 스파르타 때문이었다. 스파르타가 존재하는 ..